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주 공방전 (문단 편집) == [[형주]]의 중요성 == [[파일:attachment/형주 공방전/Jingzhoumap.jpg]] [[형주]](荆州)는 [[후베이성]] 남쪽 후난성과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. 동쪽으로 [[우한시|우한]](武汉), 서쪽으로 싼샤, 북쪽으로 징먼과 접한다. [[양쯔강]] 유역의 평야지대로 서고동저(西高東低)의 지형이며 호수와 강이 밀집된 지역이다. [[중국]]의 중앙부에 위치해서 서의 익주, 동의 양주, 북의 사주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요충지로 [[유비]], [[조조]], [[손권]]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지닌 땅이었다. 또한 위가 차지하고 있던 이북 지역을 제외하면 그나마 개발이 잘 되어있던 땅이었다.[* 물론 장강 이북의 양양, 강릉, 남양 같은 곳을 가리킨다. 장강 이남의 4군은 그렇지 못하다. [[무릉만]]으로 대표되는 이민족들이 많은 땅이었기 때문이다. 하지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후한서 지를 보면 인구는 꽤 있었다.] [[제갈량]]의 [[천하삼분지계#s-1.1|원대한 계획]]의 기본적인 밑그림은 형주와 익주를 얻어 양쪽에서 동시 북벌로 위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고, 손권은 강북으로 진출하기 위해 [[유표#s-1]] 때부터 호시탐탐 강하 등을 노렸을 만큼 오랜 시간 탐내온 땅이었다. (합비에서 번번이 진출이 막히자 그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게 된다.) 위의 입장에선 형주를 손아귀에 넣게 되면 유비와 손권의 명줄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. 조조 생애 그 세력이 다른 제후들에 비해 가장 압도적이었던 때가 [[적벽대전]] 직전의 형주를 막 손에 넣었을 당시였다. 상업의 요충지였던 데다가 영토의 넓이만으로 따져도 한반도 전체를 웃도는 넓이다. 또한 형주를 제외하고 보면 유비는 익주만을, [[손권]]은 양주 각각 한 주만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니 둘 모두에게 형주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땅이었다.[* 물론 손권은 나중에 교주도 얻지만, 이 땅은 본래 사섭 일족이 다스리며 오나라에 신종하는 자치구역의 성격이 강했다. 후에 사섭이 죽은 후에야 손오 정권이 직접 다스리게 된다. 이 과정에서 사씨 일족을 숙청했기에 반란이 있었으나 쉽게 진압하였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